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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도사 삼사순례
1. 화엄사
대한불교조계종 제 19교구 본사 / 사적 제 505호
🟢창건기
- 사적기
백제 성왕 22년 (544년)에 인도의 승려 연기(緣起)가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화엄경에서 이름을 딴 화엄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.
-> 이후 의상대사가 화엄10찰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화엄사를 중수하였다.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(현재 각황전)을 짓고 그 벽에 화엄을 돌에 새긴 석경을 둘러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.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8원(院) 81암(庵)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를 이루었다고 한다.
🟢주요특징
-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 하지만,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한다. 각황전은 국내 최대 목조건물로서 처음 이름은 장육전이었다. 각황전 옆에 108계단을 오르면 4사자 삼층석탑(국보 제 35호)이 나온다.
-주요 문화재 (국보 4점, 보물8점 등)
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, 구례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구례화엄사 각황전(국보 제 67호), 구례 화엄사 동 오층석탑, 구례 화엄사 서 오층석탑, 구례 화엄사 원통전 앞 사자탑, 구례 화엄사 대웅전 등이 있으며,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, 금정암, 지장암이 있다.
2. 천은사
대한불교조계종 제 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
화엄사,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 중의 하나
🟢창건기 및 설화
신라 흥덕왕 3년(828년)에 덕운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,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처음에는 절 이름을 감로사(甘露寺)라 하였다. 그러나 인근 화엄사의 창건연대(544년)와 비교해 볼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 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. 따라서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. 고려시대에는 절이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 '난방제일선원(南方第一禪院)'으로 지정되었다. 이후 1679년(숙종5)에 단유선사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, 이로부터 절 이름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.
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그를 죽이니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. 그래서 '샘이 숨었다'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.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하였으나 절에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.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.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로 '지리산 천은사' 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고,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.
3.사성암
🟢주요 특징
2014년 명승 제 111호로 해발 531m의 오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.
원래 오산 꼭대기에 위치하여, 오산암으로 불렸으나 <사성암 사적>에 따르면 이곳에서 4명의 고승, 즉 의상대사, 원효대사, 도선국사, 진각선사가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.
높이 20m 암벽에 독특한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약사전 건물이다. 암자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암벽에 높이 4m 되는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되어 있다. 마애여래입상의 연대가 고려 초기로 원효 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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